독도 광고 모금 캠페인

독도사랑 특별 이벤트 안내

지난 토론 2006/08/02 18:35





안녕하세요..코리안 블로그 가족 여러분...무더위와  수재 등 각종 어려움에도 불구, 매일같이 블로그에 출근해 하루 일상의 부분이 된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이번 달에는 8.15 6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독도 자료 모으기 이벤트를 실시할 계획입니다. 



 



최근 일본은 외무성, 방위청 등 국가 기관에서 과거와는 달리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한편,  일본 국내외 네티즌들에게 적극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망발은 우리 한국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지켜만 볼 수 없습니다.



 



이에 코리안 블로그는 블로거 여러분들이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에서 독도가 우리땅임을 증명하는 자료 올려주시면 국내외 네티즌들에게 독도에 대한 한국인들의 애정을 보여줄 수 있겠죠.



 



. 물론 여러분들이 평소에 생각하시는 독도에 대한 생각을 수기로 남기시면 더욱 재미 있겠죠..코리안블로그 내에서 I Love Dokdo라는 블로그를 참고해도 괜찮습니다. 독도가 명실상부한 한국 땅임을 세계 만방에 알리기 위해 영어로 작성하셔도 좋습니다.



 



독도와 한국 땅임을 알리는 자료 많이 찾으셔서



 



사이트에 올려주세용...기간은 8.2-9.5까지입니다.



 



 



 



대상 2명 (문화상품권 3장)



 



 



 



우수상 4명 (문화상품권 2장)



 



 



 



가작  10명 (문화상품권 1장)

top

Trackback Address :: http://notice.koreanblog.com/trackback/75

  1. 이상범 2006/08/21 11:54 PERMALINKMODIFY/DELETE REPLY

    1. 독도는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우산국(于山國)이 신라에 병합될 때부터 한국의 고유영토가 되었다.
     
    2. 서기 1737년, 프랑스의 유명한 지리학자 당빌(D'Anville)이 그린 『조선왕국전도』에도 독도(우산도)가
    조선왕국 영토로 그려져 있다.
     
    3. 1667년의 일본 관찬 고문헌 『은주시청합기』에도 울릉도와 독도옆에 '조선의 것'이라고 글자를 써 넣었다.
     
    4. 1696년 일본정부는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및 독도) 고기잡이를 엄금했다.
     
    5. 일본 외무성의『 일본외교문서』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부속으로 되어있다'라는 실증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6. 일본내무성은 시마네현에게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영토이고 일본과는 관계없는 땅임이라고 결정하였다.
     
    7. 일본 태정관 또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는 것을 심득(心得, 마음에 익힐 것)할 것'이라는
    훈령을 내무성에 내려보냈다.
     
    8. 갑오개혁 후 작성된 근대적 한국 지도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정확한 위치에 표시하고 한국 영토임을 명백히 하였다.
     
    9. 대한제국은 1900년, 독도가 대한제국 영토임을 세계에 공표하였고, 서양 사람들은 독도를 '리앙쿠르 바위섬' 이라고 호칭하였다.
     
    10. 일본은 1905년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 '다케시마'로 명명하였다.
     
    11.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1945년, 한반도 주변의 제주도·울릉도·독도등을 일본 주권에서 제외하여 한국에 반환 시켰다.
     
    12. 1950년 연합국은 다시 한번, 독도는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할 영토라고 밝혔다.
     
    13. 미국은 일본의 맹렬한 로비로 인해 '對일본강화조약'에서 독도를 누락하고 말았다.
     
    14. 1950년 유엔군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하여, 한반도와 함께 방위할 수 있도록 했다
     

  2. 김정옥 2006/08/31 21:23 PERMALINKMODIFY/DELETE REPLY

     
     
     
     
    1945년 한국의 광복과 함께 독도는 한국 영토로 귀속되었고, 따라서 1952년 1월 18일에 포고된 '인접해양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에서 한국 정부는 독도를 포함한 한국 영토의 한계를 명백히 하였고, 또 1954년 8월 독도에 등대를 세워 세계 각국에 통고하는 한편 독도 주변 영해 내의 수자원을 확보하였다. 이와 같은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하여 일본이 1952년 1월 28일 한국에 항의하며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옴으로써 독도문제가 일어났다.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독도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성종실록(成宗實錄)》 《숙종실록(肅宗實錄)》 등의 문헌에 따르면 조선 전기부터 우산도(于山島) 또는 삼봉도(三峯島)로 불리면서 울릉도와 함께 강원도 울진현(蔚珍縣)에 소속되어 있었다. 특히, 17세기에 한·일 간에 울릉도 영유권문제가 야기되었을 때는 민간외교가 안용복(安龍福)의 외교활동으로 1696년 일본으로 하여금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인정하게 하였다.《정조실록(正祖實錄)》의 기록을 보면 이 섬 주변에 가제(강치)가 서식하는 데서 1794년경부터 가지도(可支島)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그후 조선 조정이 울릉도 공도정책(空島政策)을 펼치면서 울릉도 및 독도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1881년부터 조선 조정은 종래의 울릉도 공도정책(空島政策)을 지양하고 개척령(開拓令)을 발포하여 강원·경상·전라·충청 도민을 이주시켜 다시 개발을 시작하였으며, 따라서 독도도 울릉도 어민들의 여름철 어업기지로 이용되었다. 이 때부터 독도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 명칭은 1906년 울릉군 군수 심흥택(沈興澤)이 그 보고서 중에 기록함으로써 최초로 문헌에 나타나게 되었다.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명백히 해주고 있고, 또 포츠담선언에 입각한  연합군  지령(指令)도 독도를 일본의 속도(屬島)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개인적인 견해를 밝힙니다 **
     
    독 ~ 독도는 정말 우리땅임을 모든 역사와 세계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과 동거동락을 함께 해온 독도, 일본의 뜻하지 않은 독도에 대한 망언과 야욕이 독도를 안타깝게 하네요.
    우리힘 이젠 강합니다.
    예전의 힘없이 지배당하던 민족이 아니라 이젠 우리도 독도를 지켜낼 힘이 있는 민족이랍니다.
    독도를 우리의 힘으로 우리민족의 의지로 사수해야 겠습니다.
    목숨걸고 지켜내서 우리의 역사와 아픔을 함께 해온 독도 우리나라의 외로운 섬이 아닌 모든 분들이 다녀갈수있는 멋진 섬 독도로 꼭 만들어야 겠어요.
    독도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섬으로 그리고 세계속에 아름다움을 대표할수있는 멋진 섬으로 꼭 만들어야 겠어요.
    함께 힘을 모아 독도를 지킵시다.
    독도 화이팅!!..

    도~ 도덕적인 양심과 우리의 의지가 독도를 더욱더 아름다운 우리섬으로 지켜낼겁니다.
    우리의 양심은 투명하고 독도에 대한 애정과 사랑은 더 많이 가지게 되는 이번 기회를 계기로 우리모두가 독도를 관심과 노력으로 지켜가야 할때 입니다.

    수~ 수 만년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땅 독도 한반도의 아름다운 섬으로 자랑스럽게 지켜갈 겁니다.

    호~ 호사담화란 말이있듯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국민의 독도에 대한 좋은 인식과 애정이 더욱더 굳건한 독도 영원한 독도 한반도의 대표섬으로 기억될겁니다.
     
     
    ................
     
    ...............
     
    아름다운 우리의 독도,
    우리 민족의 아픔과 행복과 동거동락해온 섬 독도, 외롭지만 행복한섬.
     
    우리 모두 독도에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3. 허선영 2006/09/02 11:10 PERMALINKMODIFY/DELETE REPLY

    ①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우산국에 포함되어 있다가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에 의해 신라 영토로 편입된 이래 지금까지 한국이 관리 하였다.
    ② 세종실록 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독도가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된 속도로 기록되어 있음.
    ③ 조선 숙종 때 안용복이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 받았음.
    ④ 도쿠가와 막부와 울릉도의 조선 영토 확인과 일본 어부의 울릉도 출어 금지
    ⑤ 동국지도 등 조선 후기 각종 지도에 표기된 울릉도와 독도(우산도, 자산도)
    ⑥ 일본 <오키 시정기> 내용 주장은 잘못 해석한 것임.
    ⑦ 1875년 일본 육군 참모국에서 발행한 <조선전도> 등 다수의 일본측 고지도에 보이는 독도의 한국영토 표시
    ⑧ 1900년 공포된 칙령 제41호에 나타난 울도군 설치와 석도 기록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증거가 이렇게 많은데도 왜 일본은 우길까요?
    과연 그들이 원하는게 뭔지 저의가 의심스럽네요..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은 지속적인 관심인것 같아요
    한동안 독도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들 안이한태도를 보이고 있잖아요
    언제 그랬냐듯이...꾸준한 관심이 필요할꺼같습니다

  4. 허선영 2006/09/02 11:14 PERMALINKMODIFY/DELETE REPLY

    1. 삼국사기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증왕 13년 6월 울릉도에 자리하고 있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되어 해마다 토산물을 바쳐 왔음을 알 수가 있다. 우산국 사람들은 그지형 및 토양으로 보아 반어반농민집단 생활을 하여 왔으며, 내륙보다 낮은 문화 수준이었으나, 신라 사람과 언어가 통하고 왕래도 있은 듯하다. 이 곳 사람들은 본토의 군선이 접근하면 가파른 산정으로 피해 귀복을 거부하며 살아 왔는데, 이사부가 하슬라주의 군주로 있으면서 계략을 써서 굴복시킨 것이다. 우산국은 울릉도에 위치한 고대부족읍락국가였으며, 그 영역은 가시 거리 내에 위치한 독도와 울릉도 주변의 소도서에 이르렀던 것이다.따라서 독 도는 일찍이 우산국의 일부였다가 지증왕 13년(512년) 울릉도와 더불어 신라에 의해 영유화되었다.
    三國史記 卷4
    이찬 이사부 (이사부는 내물왕의 4대손으로 성은 김씨이다.)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사자들을 풀어 모조리 밟혀 죽게 하리라. 그는 지증왕 6년(505) 실직주(삼척)의 군주가 되어 우산국을 정복하려고 하였다. 우산국 사람들은 사납고 거칠었으므로 힘으로 굴복 시키기가 어렵자, 이사부는 한 꾀를 생각해 냈다. 그는 나무로 허수아비 사자를 많이 만들어서 배에 모두 싣고 우산국 해안에 이른 후,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사자들을 풀어서 모조리 밟혀 죽게하리라'하고 위협하였다.그러자 우산국 사람들은 이사부가 생각했던 대로 순순히 항복하고, 매년 조공을 바치겠다고 하였다. 이사부는 그후,진흥왕 2년(541년)에 이찬(신라의 17등급 중 둘째 위계)이되었고, 진흥왕 6년에는 국사 편찬의 필요성을 왕에게 건의하여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2. 고려사
    고려사에 의하면 930년(태조 13) 백길, 토두 등이 우산국 을 대표하여 특산물을 바침으로, 조정에서 각각 정위, 정조의 관위를 수여함으로써 신라에 귀복되었던 울릉도가 그대로 고려에 복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15년(현종 9년)에 동복여진이 우산국에 침입하여 농사에 큰 피해를 입히자, 관리 이원구로 하여금 농기구를 보내 주도록 하였으며, 4년 후에 또 다시 여진족의 약탈이 거듭됨에 따라 본토로 피난온 우산국 백성들에게 명주(강릉)의 관리가 양식을 주어 이들을 보호하였다. 성종 때에 지방 제도를 군현제로 정비함에 따라서 우산국도 고려의 한 주현에 속하게 되었다. 한편, 1031년(덕종 원년)에 우릉 성주의 아들인 '부어내다랑'이 조정에 토산물을 바쳤는데, 이 때 조정에서 우릉 성주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1140년(인종 19)에는 '명주도감창사'가 본토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릉도 특산물을 임금께 올렸다. 이를 통해 우릉도는 '명주도감창사'가 관할하는 지방 조직에 편입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高麗史
    1156년(의종11) [동해 가운데 우릉도가 있는데, 이 곳의 땅이 기름지며 주현을 설치한 때도있었다.] 는 말을 듣고 백성들을 옮겨 가서 살게 하고자 '명주 도감창전중내급사인 김유립으로 하여금 조사토록 한 결과, [암석이 많아 백 성들이 옮겨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함에 중지한 일이 있었다. 이처럼 고려 조정에서는 울릉도,독도를 지방 관제에 편입시키고 백성을 옮겨 살도록 노력하는 등 울릉도와 독도 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3. 세종실록 지리지
    조선 시대에 이르러 독도의 지리적 인식이 보다 분명해졌다. 태종은 독도와 울릉도가 왜구의 침략을 받을 염려가 있고, 중앙의 직접 관리가 힘들어 치안 유지의 일환으로 공도정책을 썼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어부들의 어로 활동이 계속 되었고, 본토에서 도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종 때는 독도를 '우산도'라 불렀다. 1452년(세종 7년)에 김인우를 '우산무릉등처안무사' 라는 직명을 주어 울릉도와 독도를 관장토록 하였다.
    世宗實錄 地理志
    "독도는 울릉도와 더불어 울진현의 동쪽 바다 가운데 있고, 울릉에서 그다지 떨어져 있지않아 바람이 잔잔하고 청명한 날이면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우산으로 불렀다" 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울릉도에서 독도를 관망하려면 120m 높이의 지대에 오르면 가능하고 성인봉 정상에서는 93마일까지 볼 수 있다.
    4. 그 밖의 문헌
    * 新增東國餘地勝覽
    1531년『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우산도,울릉도를 무릉이라고도하고 우릉이라고도 한다. 두 섬은 울진현의 정동 바다 가운데 있으며, 세봉오리가 하늘 로 곧게 솟았으며,남쪽 봉오리가 낮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 蔚陵島事蹟
    1694년 『위능도사적』에는 "울릉도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바다위에 섬이 하나 있는데, 아득히 동남방에 못미치고 거리는 300여리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기록도 있다.
    * 萬機要覽
    1809년 『만기요람』에는 울릉도와 독도의 관계를 기록하고 있는데 "輿地志(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 땅이며,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松島(송도)이다" 라고 하였다.
    * 칙령 제 41호
    대한 제국으로 개칭한 후(1897년) 울릉도에 일본인들의 불법 침입 및 삼림 벌채가 문제되어, 조정에서 1899년 10월 조사단을 울릉도에 파견해 보니, 일본인들의 집단적 도래와 불법적 삼림도벌이 심각하였다. 조정에서는 '400여 가구에 1,7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농경지는 7,700여 마지기였다.' 는 출장 보고를 근거로, 1900년 10월 25일 ' 칙령 제 41호'를 공포하였다. 정부에서는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 정한 건'인 칙령 제41호를 관보 제1716호에게제하고, 종래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울릉도와 그 부속 도서를 묶어서 독립된 울릉군을 설치하고 중앙관리인 군수로 하여금 울릉도는 물론 독도까지 관할토록 하는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칙령 제2조에는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 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할사'라고 규정하였다. 이 때의 석도는 독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울릉도 주민들은 '돌'을 '독'이라고 하고 '돌섬'을 '독섬'이라고 하였다. 울릉도 주민들이 우산도를 '독도(돌섬)'라고 부르고 있음을 보고 받은 대한제국 조정은 '독섬'을 의역하여 '석도'로 표기한 것이다.
    *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서
    독도가 오늘날의 이름인 '독도'로 처음 쓰인 것은 1906년(광무 10년) '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서' 에 의한 것이다. 1906년 4월 일본 지방 관리들이 울릉군수를 방문하여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통보하자, 울릉군수 '심흥택' 은 "본군 소속 독도가 일본의 영토에 편입되었다는 말을 하더라'고 강원도 관찰사를 경유하여 조정에 보고하였다. 이보고를 받은 조정에서는 1906년 4월 29일자 지령 제3호에 '독도가 일본인의 영지라는 일본인의 설은 전혀 근거없는 것' 이라고 단호하게 부정하고,'독도의 형편과 일본인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다시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지시하였다

  5. 홍석현 2006/09/05 21:10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전 일본이 제작한 지도를 바탕으로 증명하고 싶습니다, 물론 사진까진 올릴수는
    없지만 검색하여 찾아보시면 보실수잇을꺼라 생각됩니다
     
    *일본의 지도에서도 독도는 한국땅이였다,
     
    1.조선국지리도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구끼 등이 제작한 지도이다.
    팔도총도의 강원도 부분에 울릉도와 독도를 표기하였다.
    일본에서 최초로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식 명칭으로 표기한 지도로 이지도는
    일본에서 임진왜란 이전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대한민국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던 중요한 증거자료이다.
    2.팔토총도
    이 지도는 1530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동람도' 를 모사한 지도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침략을 목적으로 제작한 지도이다.
    이 지도에서 일본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일본의
    영토로 규정되어 있는 대마도 역시 조선의 영토로 기록하여 '대마도 논쟁' 을
    일으킬 소지가 잇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3.총회도
    1700년대말 일본의 총회도로써, 삼국접양지도와 같이 독도를 황색으로칠하고
    옆에다가 '조선의 것' 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4.하야시의 삼국접양지도
    일본의 경세 사상가이자 일본의 가장 저명한 지리학자 하야시헤이가 제작한
    [삼국통람도설]의 부속지도인 '삼국접양지도' 는 1785년에 제작된 것으로, 조선과
    일본, 중국동북지방 등을 그린지도 이다. 국경과 영토를 나타내기 위해 나라별로
    채색을 하면서 조선국을 황색으로 일본국을 녹색으로 채색했는데, 울릉도와 독도
    를 정확한 위치에 그렸으며, 각각 '다케시마' 와 '마쓰시마' 로 표기하고, 모두 조선국의 색깔인 황색으로 표시하여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뚜렷하게 표기하고있다. 그리고 울릉도와 독도의 두 섬 옆에다가 다시 '조선의 것' 이라는 글자를 넣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거듭 명백히 밝혔다.
     
    이 지도는 지난 1993년 11월 4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견되어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일본의 억지 주장에 쐐기를 박았다.
     
    5.일본변계약도
    19세기초 일본 막부시대에 울릉도외에 독도의 오기인 것으로 여겨지는 우산도가
    표기된 서양식 일본지도가 발견됐다. 이 지도의 우산도는 지리지식이 없었던 당시 울릉도의 옛이름을 독도에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변계약도]로 이름 붙여진 이 지도는 일본 막부정부가 공식적으로 제작한 것이어서 한'일간에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독도 영유권분쟁과 관련해 주목된다.
    부산외국어대 김문길교수(51'일본어과)는 3일 일본 나라(나량) 현 덴리(천리)대학
    도서관 고문서실에서 일본의 서양식 작도법에의해 최초로 제작한 이 지도를 발견, 현재 독도를 우리 영토로 표기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가로34.4cm 세로22.5cm 크기의 이 지도는 일본 막부시대 측시소 소장이었던 다카하시 다케야쓰(고교경보)가 막부명령에 따라 당시 미개지역으로 남아잇던 사할린섬등 일본 변경지역 사정을 조사하기 위해 1807년부터 1809년 까지 3년 동안에 걸쳐 제작한 것이다.
     
    모두 4편의 동판으로 제작된 세계지도인 [신전통계전도] 의 일부분인 이 지도에는 울릉도는 현재 명칭 그대로, 독도는 [우산도] 동해는 일본해가 아닌 조선해로
    각각 분명히 표기돼 있다.
     
    6.세계전도
    일본 스스로 지도제작에 제일 권위가 있다고 하는 해군수로부터 발행한 지도로
    현재까지 발행된 지도중 독도가 표기된 유일한 세계지도이다.
    이지도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송도와 리아코르암' 이라하여 조선의 영토로 표기하였고 부산과 시모노세케 사이의 바다를 조선해엽으로 표기하였다.
     
    7.소학지리용신지도
    일본의 국정 교과서 소학지리용신지도에서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기하고있다.
    이 지도는 일본이 1904년 부터 문부성이 직접 발행해 사용하기 시작한 일본 최조의 국정교과서에 사용된 지도로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삿포로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가이타쿠무라의 당시 중학교 교사내에 전시된 교과서 [소학지이용신지도] 에서 확인됬다.
     
    이 지도에서 우리나라는 '한국(조선)' 으로 중국은 '청국' 으로 표기했고 한국지도의 북위 37,9  ,동경 129,5 지점에 죽도라는 이름으로 독도를 표시하고 색깔로 분명히 한국영토임을 표시하고 있다. 이 지도는 울릉도를 독도보다 훨씬 동쪽에 그려넣은 등 독도의 위치를 터무니없이 부정확하게 표시해 당시 일본이 독도에 관심이 없었으며 위치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설명에는 이 교과서가 메이지40년 (1907년) 에 일본 문부성이 발행한 것으로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사용해온 검정교과서를 페지하고 1904년 붙 각급 학교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제 1기 국정교과서중의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무슨말이 필요있겠습니까, 일본,  자신들이 그려낸 지도에서도 말하고있지않습니까, 독도는 한국, 대한민국영토라는걸, 설마 자기조상들이 그린그림보고 엉터리라고 잘못된그림이라고 주장할수는 없겠죠,
    독도는 그냥 섬이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존심입니다, 지켜야합니다,
    반짝관심이 아닌 영원한 관심으로 말입니다,

  6. 서현진 2006/09/05 23:24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카이로 선언★
    제 2차세계대전중의 연합국 수뇌회담으로 대일항전과 전후 처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검토한 최초의 회담, 1943년 11월 22~26일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미국대통령 F.D. 루즈벨트, 영국총리W.L.S, 처칠, 중국총통 장제스가 참석하여 대일본전쟁수행 협력과 전후의 영토에 대하여 의논하여 27일 <카이로성언> 을 발표하였다.
     
    1943년 11월20일 미국 대통령 루 스벨트,영국 수상처칠, 중국 총통 장개석등이 회합한 카이로 회담에서는 다음과 같은 '카이로선언'을 합의 발표했다.
     
    "각국 사절단은 일본국에 대한 장래의 국사작전을 협정했다. 3대 연합국은 해로,육로,공고,에서 야만적인 적군에 대하여 가차 없는 압력을 가할 결의를 표명했다.
    이 압력은 이미 증대되고있다.
    3대 연합국은 일본의 침략을 제지하고 징벌하기 위하여 현재의 전쟁 을 수행하고 있는 바다, 위연합국은 자국을 위해서 이득을 요구하고 있는것이 아니며, 또한 영토확장의 의도도 없다.
     
    위 연합국의 목적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개시 이후에 일본이 장 악 또는 점령한 태평양의 모든 섬들을 박탈할 것과 아울러 문주,대만,팽호도 등의 일본이 중국에게서 절취한 일체의 지역을 중화민국에 반환함에 있다. 또한 일본은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약취한 모든 다른지역에서도 축출될 것이다.
     
    위의 3대국은 조선 민중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조선이 자유로워지고 독립하게 될것을 결의했다.
    이런 목적으로 위의 3대 연합국은 일본과 교전중인 여러 연합국과 협조하여 일본의무조건 항복을 촉진하는데 필요한 엄중하고 장기 적인 작전을 계속할 것이다."
     
    "카이로선언"은 일본에게 반환받고 일본을 축출해야 할 지역으로
    1.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 일본이 장악또는 점령한 태 평양 안에 있는
    모든섬
    2.1894~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중국에게 절취한 만주,대만,팽호도등
    3.일본이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약취한 모든 다른 지역등이었다.
     
    그리고 카이로선언은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다.
     
    여기서 한국 영토는 3.의 일본이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약취한 모든 다른지역"에해당한다. 또한 그 시기의 상한은 1894~95년 청.일전쟁때 일본이 중국에게서 절취한 영토를 반환 대상에 포함시킨 것에서 알 수 있는 바와같이, 일본이 대한제국으로부터 1905년 2월 독도를 약취한 시기를 포함하는것이다. 독도도 "일본이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약취한 섬" 으로써, 한국에 반환되어야 할대상으로 규정된 것이다.
     
    위의 내용은 2000년 5월 신동아에서 발췌한것으로 신용하교수님의 100문100답의
    내용중 일부라고합니다.
     
    ★미-일 평화협정 초안★
    지난 1951년에 체결된 미-일 평화협정 초안이 독도를 한국령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국립문서기록보존소에 보관된 이 평화협정 초안은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 대한 미국정책임자였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자필로 일본은 독도(일본명 다케시마)에서 떠나야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적혀있다. 이 협정초안은 일본이 한국으로 영유권을 넘겨야 할 한반도 주변의섬들로 제주도(지도명 콜파트), 거문도(나나우) , 울릉도(델렛) 및 독도(라이언코트) 등 4개도서를 명시하고 있다.
     
    특히 이 초안의 한 모서리에는 맥아더 장관의 이같은 지시내용이 연필로 적혀있어 당시 일본을 점령한 미 군사령부가 독도를 한국령으로 공식 인정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국립문서보존서에 보관된 미 군정시대의 지도에도 우추리어섬으로 표기된 울릉도 동남쪽 해상위에 위치한 라이언코트바위섬이란 이름의 독도가 한국 영토로 분류되어 있다. 이 지도는 지난 1942년 미 해군장관 산하의 해로측량국이 제작한 것으로 독도가 한국령이라는 점을 뒷받침해주는 귀중한 자료가 될것으로 보인다.
     

Write a comment